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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임상옥의 경영철학과 나눔을 실천한 부자

물 긷는 남자 2024. 11. 18.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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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배경
조선 제일의 거상 임상옥은 1779년 정조 때 평안도 의주 평민 출신의 집안에서 턔어났다.  밀무역을 하면서 겨우 생계유지하던 중, 당시 역관은 정식 거래를 허가하여 떼돈을 벌었는데 조정에서 평안도 출신을 꺼려 등용이 안되어 여러 차례 낙방으로 상심하여 자결하자 임상옥은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고 고립된 환경으로 장사에 뛰어들고, 어려서부터 아버지 따라다녔던 청나라 기억과 중국어 공부를 한 탓에 장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화폐에 대한 생각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부자는 극소수요, 가난은 늘 대물림 되어 오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분야는 넓어지며, 정보의 확산 속도는 놀라워 본인의 부의 확장 및 기회가 늘 열려 있어 누구나 큰 부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앞만 보며 나아 가는 요즈음 정신적, 문화적, 물질이 가져오는 폐해가 가히 압권인데 조선 제일의 거상 임상옥을 통하여 베풂과 돈에 대한 존중, 이웃에 대한 사랑을 되새겨 보려고 한다.


의주 상단 취업과 장사 철학
등에 짐을 지고 멀리 이동하며 판매하는 일이라 특히 교역 길의 위험과 편견, 거래에 대한 불공정 등 고난의 길을 겪어야 했다. 오늘날 자영업이 고된 시간과 노동, 경쟁의 격화 서비스의 과대 요구 등 가난과 경영난 기약 없는 시간 속에 살아 가는 것과 다르게...
임상옥은 아버지 따라 청나라 북경에 드나들며 본격적인 대청 무역에 나선 나이 18세였다. 쓰라린 경험을 통해 국제무역에서는 제일이 신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상업상 도리와 더불어 국제무역 시장이 움직이는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성실한 근무 태도 및 처신으로 지역 상단의 책임자가 되어 어느 날 어느 대갓집 결혼 예물 준비 물품으로 가게 되었는데, 한명은 짚신으로 본인은 비단을 가져 가나 짚신 가진 상인은 전부 팔고 본인의 것은 전부 가지고 오게 되는데, 여기서 상대의 처지와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 원인이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큰 사업가가 되는 길임을 알게 되고 적정한 이윤 통한 기준과 신념을 갖게 되었다. 

 

나라간 교역의 위치
오늘날 사인 간의 거래로 평탄한 거래가 이루어 지기만 하지 않고, 가깝게는 마늘 파동, 요소수 파동, 고고도 미사일 샤드 등 국가 간의 문제로 거래의 큰 위협을 겪게 되는 점 등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중간자 입장을 유지하며 나아가기가 만만하지 않다. 마늘 파동. 백화점 철수 문제 등
한편 임상옥은 커다란 세금 납부 등으로 국가에 기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재산과 식량을 기부하고, 국방 수비 등에 필요한 군량미 비축에 헌신하고 길을 닦는 등 공공사업에도 재산을 기부하며, 사회적 공헌에 이바지하였다.


무역의 주도권 갖다
임상옥은 야망이 큰 인물로 대청 무역에 독점 할 수 있다면 최대의 부자가 될 수 있고 작은 부자는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되지만 큰 부자는 누군가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할 즈음, 때마침 조정의 핵심 박 중경을 통하여 조선 상인 최초로 대청 인삼 교역권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43세인 1821년 사절단과 동행하여 동행하였는데 조선의 인삼은 청의 상인들이 가장 탐낸 조선의 특산품이었다. 임상옥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청나라 상인들은 한 해의 사업이 걸린 인삼의 유리한 구입을 위하여 담합을 구상하고 있었고, 사행 무역에 나선 조선의 상인들 역시 인삼이 가져다 줄 막대한 이득이 자신들의 상업 활동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거래인데 저렴한 구입을 구상한 담합에 들어 갔다는 소식을 접한 상인들은 불안함과 저렴하게라도 팔고 가기를 희망하는 바, 임상옥은 동향을 파악하던 중 위기는 기회라는 신념으로 조선 상인들의 인삼까지 모두 구입하여 조선으로의 귀환이 얼마 남지 않자 모일 모시에 인삼을 태우고 가겠다는 소식을 퍼뜨리고 정한 기일 날 아니나 다를까 인삼을 태우는 지라 기겁하여 거래를 청하니 당초와 다른 몇 배의 가격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여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임상옥의 인생 후반기
거포라는 호를 가질 만큼 집 앞에 채소를 키우고, 거두어, 살아 가기를 만족해할 만큼 소박하고, 요즘처럼 노블레스 오블쥬를 실천한 인물이었다. 늘 교만하지 않고 넘치는 행동을 삼가며, 행하거나 받기를 잔의 70~80% 만큼 만취하는 늘 지나치게 넘쳐남을 경계하기를 평생 실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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