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범려의 내력
범려(C.536~BC.448년 추정)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 정치가, 책략가로 자는 소백이며 원래 초나라 원탁 또는 오호의 언덕에서 태어나 고향에서는 미치광이로 소문났으나, 대부 문종의 추천 따라 월나라에서 구천을 섬겼다.
오늘날 진정한 지식인 및 노블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부자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 지배적이며, 권력을 취하면 부를 쟁취하고, 자식에게 부의 대물림을 위해 온갖 편법을 통한 부와 명예의 대물림을 위한 끼리끼리 카르텔을 형성하며, 돈이 지배하는 오늘날 가난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는 시대 속에서 지식인으로서 자기의 위치를 유지하기가 난망한 시절이 되어 가고 있다. 범려는 초 고난 속에서 임금을 도와 국가를 찾고 안정화 기틀 마련과 공을 통한 임금과의 동행의 어려움을 알고 미리 관직에서 떠나 토사구팽을 면하고, 타국으로 떠나 사업으로 거부가 되어 위기의 떄가올 때 전 재산을 나누어 주고, 또 다른 나라로 떠나 소금 및 관개 사업으로 중국 역사 장사의 신으로 등극하게 되며, 우리가 도주 공이라는 이름으로 칭한다.
2. 범려의 활동과 시대 상황
초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귀족이 아니면 벼슬이 안되는 상황이라 문종과 함께 월나라로 가서 윤상 휘하의 관직에 봉직하던 중 오왕 합려의 공격으로 위기를 겪던 중 범려의 세 번에 걸친 특공대 작전으로 적의 사기를 꺽고 대승하며, 이 전쟁 중 오나라 합려를 죽이는 활약으로 구천의 책략가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되었다. 이의 복수를 되새기며 합려의 아들 부차는 복수를 꿈꾸며 강성한 오나라 군대와 책략가 오자서의 활약으로 윤상이 떠난 후 구천이 왕위를 받아 불안한 내.외 환경에 흔들릴 때, 가시에 누워 자며 절치부심(와신)한 부차에 의한 월나라 침공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단 한번의 승리로 자만에 빠진 구천은 오나라 군사력이 커지기 전에 오나라를 부수겠다고 범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494년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왕 부차에게 크게 대패하여 도성 뒷산인 회계산(저장성 소홍시)으로 쫓겨가 포위망에 갇혀 나라의 멸망은 물론 구차의 목숨 또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에 범려는 오나라 간신 백비를 뇌물로 매수하고 서시 등 미인을 바치며 월나라를 바쳐 신하가 되겠다고 화의를 청하며, 이를 역사에서는 회계 지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천에게는 이런 치욕을 당한 사람이 어찌 왕 한 분뿐이겠습니까? 살아 있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으니 우선은 살아남자고 설득하였습니다. 이후 오나라에 끌려간 구천과 범려는 부차의 마부와 종으로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부차는 범려에게 신하 되기를 청하나 왕이여 저는 망한 나라의 신하 이온데 왕을 모실 수 없는 점 양해를 구하고 구천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3. 와신상담
우리들은 살면서 남에게 모진 수모를 겪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쓰라린 고초를 겪고 난 후 재기할 때까지 온갖 시련을 이겨 나가 재기할 때가지 참고, 견디며, 승리하는 순간까지를 와신상담이라 합니다. 작금의 상황들이 녹녹치 않는 현실 속에서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소규모 소매업으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는 이때, 과연 각자의 경제 규모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전장에서 살아남길 바라며.... 한편 구천에게 쓰라린 세월을 보내던 중 오왕 부차가 병에 걸리자 부차의 경계심을 풀어드릴 요량으로 범려는 구천을 설득여 부차의 건강을 살펴본다며 부차의 똥을 먹도록 하여 충성심을 믿게 하여 측은지심을 갖게 된 오왕 부차는 구천과 범려를 돌려보냅니다.
와신상담의 시간 속에 부국강병을 실시하고, 오의 경계를 풀기 위해 뇌물을 뿌리고, 국내 민심을 다 잡기 위하여 농민의 생활을 부유케 하고 상가도 방문하고, 집에 변고가 있으면 부역 등의 면제로 백성들과 단합과 내치에 힘을 쏟고 성은 오나라 쪽이 보이는 쪽은 성벽을 쌓지 않고 오나라가 방심하도록 하였습니다. 반면 오나라는 주색에 빠진 부차와 간신 백비의 국정 농단 속에 국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니다. 오가 제나라와 전쟁 틈타 오의 도읍을 공략 및 함락시키고 부차가 항복해 오자 범려의 권유로 하늘은 왕에게 왔으니 오나라는 왕의 것이오니 항복을 받지 마소서. 이로써 부차는 명예로운 자결의 기회를 주었다.
4.토사구팽:
어려움은 함께 되나 공은 함께 안되는 걸 판단한 범려는 날로 교만해져 가는 구천에게 왕에게 회계산의 치욕을 겪게한 벌을 받아야 한다며 벼슬을 놓고 물러나 화를 면하고, 재상 문왕은 범려의 권고를 놓치고 자결을 하였다. 인생은 새옹지마라 진퇴의 구분이 오늘에도 유효함을 알게 한다.
5. 변신(사업의 신):
제나라로 간 범려는 이름을 바꾸고 지기의 이름을 치이자 피로 바꾸고 해변에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짓고 크게 재산을 늘리나 이를 세상이 알게 되면 화를 자초한다며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제나라로 갑니다. 여기서도 소금 사업 등으로 막대한 재산을 벌면서도 세 번이나 천금을 벌었고 세 번이나 나누어 주며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여 오늘날 진정한 부자란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게 하였다. 범려는 충성으로 나라를 지켰고, 지혜로 몸을 지키며, 장사로 부자가 되어, 천하에 명성을 얻었습니다.
경영에서는 때를 기다려 움직이고, 재화와 자금의 순환은 빠르고, 박리다매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 원칙으로 나라의 부와 맞먹는 재산을 모으고 나눔을 실천한 오늘날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한 진정한 부자요 사업의 신이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과 배려는 있는 과오도 용서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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