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지보(邯鄲之步)
옛 말씀에 "자기 발걸음이 편하다. 자기 몸에 맞는 옷이 입기에도 편하다" 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도 늘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남의 떡은 커 보이고 나의 것은 늘 작아 보인다. 불행은 늘 여기서 시작된다.
전국시대 조나라 사상가 공손룡(公孫龍)은 언변이 뛰어나고 자의식이 강했다. 자신을 천하제일의 논객으로 자처한 그는 탁월한 변론으로 뭇사람들을 궁지로 몰았다. 그런데 장자가 그에게는 눈의 가시였다. 어느날 위나라 공자 모를 찾아, 본인의 논변과 지식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때문인지요 하고 물으니 공자 왈
닮지 말고 나 닯게 살아 가자
우물 안 개구리, 좁은 빨대 구멍으로 세상을 보려는 자의 비유로,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시골 사람이 한단의 걸음 걸이를 배우려다 한단 걸음걸이를 채 익히기도 전에 고향 걸음걸이를 잊어버려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말씀에서 유래한 것이다. 장자의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단지보에 따른 비유
한단의 걸음걸이, 한단지보(邯鄲之步)는 자신의 분수를 잊고 남만 따라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맵새가 황새를 따라 가면 가랑 찢어진다", 천리마는 하루 천리길을 달리지만 쥐 잡는데는 고양이만 못하다는 것이며, 이는 쓰임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올빼미는 밤에는 벼룩도 잡지만 대낮에는 태산도 보지 못한다. 본성이 다른 까닭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비교되어지고, 경쟁 사회 속에서 나만의 위치를 찾아 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의 자리 찾기
남과 비교 하거나, 남의 것을 탐하거나, 나와는 관계없는 힘있는 자를 추종하거나, 나의 위치에서 비교 안되는 현상에 자기를 갖다 놓거나, 경쟁이라는 이름 속에 애끓이며 나를 소모하거나, 남의 발걸음에 비틀거리며 쫓아 가는 나를 잊어 버리며 살아 가고 있다.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유한한 삶을 살아 가면서 제3자 눈으로 보면 우물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바램일진데, 마치 최고의 정상에 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정상으로 나아갈 것인양 무작정 나아가는 모습들이 횡행하는 지금 , 나는 나의 걸음걸이로 나아 가고 있는가, 나는 추종하여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가.
한단지몽이여 헛되도다. 나답게 살자 . 유종의 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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