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어: Україна)는 동유럽 국가다.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흑해와 아조우해, 동쪽과 북동쪽으로는 러시아,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벨라루스, 서쪽으로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남서쪽으로는 루마니아, 몰도바와 접한다. 키이우가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다. 동유럽 평원과 이어져 있으며 기후는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법적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이고, 인구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지만, 대부분 동부 인구(주로 동부 지역과 동남부 지역, 오데사 지역)는 러시아어가 사용기도 하다. 주요 도시로는 키이우, 드니프로, 하르키우, 르비우, 오데사가 있다. 2014년 3월 18일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함에 따라 행정력이 크림반도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제사회는 대체로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의 일부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 자포리자와 도네츠크 등을 빼앗겼다.
중세 초 루스 한국으로부터 키이우 루스로 이어진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투르크족·몽골족 등 지배를 받았다. 19세기까지 대다수 우크라이나 영토가 러시아 제국에 통합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통제 아래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혁명 후 혼란과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여러 차례 독립을 시도하여 1917년에 민족국가를 건설했으나, 1922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되었다. 1923년 소비에트 연방 헌법 적용을 받으며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란 이름의 구성국으로 존재했다,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하였다.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도네츠 탄전의 석탄, 크리보이로크의 철광석, 카르파티아 유전과 천연가스, 그 밖에 망간, 우라늄, 식염, 칼리염, 석회석 등을 산출한다. 산업으로는 석탄·철광·선철 생산에서 중요성 있다. 풍부한 수력 전기를 이용하여 기계 제조 공업·화학 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유수 공업 지대를 이루고 있다. 석탄업, 철강업, 기계 제조업, 화학 공업 중심은 돈바스·드니프로 주이며, 드니프로강 하구에서 키이우 사이 6개 수력 발전소가 단계상(段階狀)으로 건설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경지율은 약 70%에 이르고 있어, 겨울 밀·옥수수·보리·사탕무·해바라기·포도의 재배, 가축 사양 등에서는 구소련 시절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온난한 크림반도 남단과 광천이 솟는 카르 파트 지방은 중요한 관광·보양지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 〈타파스 부리 봐〉 배경으로도 알려졌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를 쓰고, 우크라이나인 대다수는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믿는다.
국호
우크라이나(Україна)라는 국호는 고대 동슬라브어 표현인 Оукраина/Oukraina에서 유래하였다. 우(Оу)는 전치사, 크라 이(краи)는 땅 또는 변경, 경계를, 나(на)는 접미사에 해당하는 단어이며, 크라 이(країна)와는 러시아어에서 파생된 크라 이(край)와 비슷한 어원을 가지며, 우크라이나의 국명 뜻을 풀이하면, "변방의 지대", "변방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동슬라브어로 국가, 땅, 영토, 변방, 끝자락 등의 의미를 뜻한다.
기원
우크라이나 역사는 중앙아시아에서부터 건너와 동유럽을 정복한 튀르크 민족들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3세기부터 시작한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들의 유럽 침공과 동슬라브족 정복 그리고 이주는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사바르 한국에 이어 하자를 한국까지 이어진다. 동유럽 동슬라브 원주민들은 사바르 힌국에 정복당해 프랑크족들과 대립하기도 하였고 하자를 한국의 우크라이나 초원 정복으로 인해 동슬라브 문화는 서유럽의 문화와는 조금 이질적인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하자를 한국의 영향에 따라 동슬라브족으로서의 정체성이 생기게 시작하였고 8세기에서 9세기에 루스 힌국이라는 고대 튀르크어인 군주 칭호인 칸을 자칭하는 북 게르만족 루스인의 첫 국가가 등장하였다. 그전까지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지배했던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들이 칸을 자칭하였으나 그 지배 아래 동슬라브인들도 완전히 종속과 동화되어 동슬라브인의 정체성이 확립되었고 그 후 동슬라브인들이 을 자칭하였다.
키이우 루스는 10세기까지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영향을 받았고 이에 따라 류리크 왕조의 시조인 류리크 또한 위대한 칸이자 왕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862년경 전까지는 확실히 칸이라 칭한 루스인들이 페르시아 사서와 동, 서로마 기록에 남아 있다. 여기에 원초연대기의 기록에서는 루스인들의 으로 알려진 류리크가 동슬라브족 지역에 정착하면서 류리크 왕조와 키이우 루스가 나타나며 칸이라는 호칭보다는 크냐지 또는 벨리키 크냐 지라는 호칭이 자주 쓰이게 된다. 동슬라브인들은 튀르크계 칸국인 하자를 한국의 지배하에 오랫동안 있었다. 루스인들의 첫 국가인 루스 칸국이 키이 루스로 발전하였고 그 남쪽이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이다. 이 중세 국가의 수도는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였다. 키이우 루스는 현재의 북 게르만족 계통의 루스인들이 세웠다고 하나 동유럽 학자들은 이에 부정적이다. 루스인들은 강력한 류리크 왕조를 세웠다. 그리하여 10세기와 11세기에는 키이우 루스가 유럽에서 중요한 국가 중 하나가 되어 후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3국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키이우 루스는 내부 분열과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우크라이나 땅에는 갈리치아(Galicia, Halych)와 볼지이나(Volhynia, Volodymyr-Volynskii) 두 공국이 그 뒤를 이었다. 갈리치아와 -볼이니 아는 왕국으로 합쳐졌다가 분열되고 결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정복되었다.
종교
이 부분의 본문은 우크라이나의 종교입니다.
문화
우크라이나 문화는 우크라이나 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혼인 생활 역시 전통에 따르는 경향이 있었으며, 서유럽에 비해 조부모가 아이들 양육에 있어 더 큰 역할을 담당했다. 우크라이나의 문화는 건축, 음악, 미술에서 반영되듯이 동/서 인접국들의 영향을 받았다. 소비에트 연방의 우크라이나 지배는 1932년 스탈린이 '문학과 미술 조직 재건'이라는 법령을 공표하면서, 소련 내 공산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미술과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정책은 사실상 독창성을 무참히 짓밟는 것과 다름없었다. 1980년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이 일어나면서, 소련의 예술가들과 작가들은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되찾는 데 성공하게 된다.
건축 양식
키이우에 있는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은 우크라이나 건축 양식의 예로 들 수 있다. '파산키'라고 불리는 부활절 달걀의 전설은 우크라이나에서 유래한다. 부활절 달걀은 일정한 패턴을 따라 왁스(또는 촛농)로 그림을 그리며, 염색함으로써 달걀에 산뜻한 색을 불어넣으며, 염색은 그 전 왁스 칠한 부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달걀이 완전히 염색된 후에는 왁스 칠 한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색깔 패턴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통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의 기독교 수용보다도 선행한다. 2000년에는 카르파티아산맥 근처에 있는 코로는 도시에 우크라이나 7대 불가사의로서 현대 우크라이나의 상징으로 선별된 피한 카 박물관이 세워졌다고 한다.
근대
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카자크 수장국이 세워져 백 년 이상 러시아 차르 국의 압력을 견뎠으나 결국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배하의 동부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을 선언, 1920년에는 동서 통일을 선언했으나 외부 군대의 침략으로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1922년에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1921년
1922년, 1932년
1933년 두 차례에 걸쳐 큰 기근을 겪었다. 둘째 기근은 스탈린이 집단 농장 체제에 저항이 심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위적으로 부른 기근으로 홀로도모르라 불린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적게는 8백만 명에서 많게는 1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대 정치
現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現 우크라이나 총리 데니스 시미할
우크라이나는 입법, 사법, 행정 등 3권이 분리된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통령은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 중임제인데, 1번의 중임이 가능해 최대 임기는 10년이다. 대통령이 총리와 내각을 지명하는데,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야당이 의회가 절대다수일 경우 총리가 대신 권력을 독점한다.
행정 구역
우크라이나는 24개 주와 1개 자치 공화국, 주와 같은 지위를 갖는 2개 특별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크림 자치 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은 2014년 이후부터 러시아의 실질적인 지배 상태에 있다.
의회
우크라이나 의회는 단원제 최고회의(Verkhovna Rad)이며, 총 450석 중 225석은 전체 유권자의 4% 이상 지지를 얻은 정당에 비례로 배정된다. 나머지 225석은 선거구에서 직접선거로 결정된다. 모든 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의회는 총리를 뽑고, 법률을 발의하고, 국제 협정을 비준하며 예산안을 승인한다. 2020년 6월 현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정렬은 2019년 7월 21일 총선거의 결과 순).
우크라이나는 금융위기와 정국 불안으로 2010년 1월 17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했는데, 과반 득표가 나오지 않자, 같은 해 2월 7일 결선 투표를 통해,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를 확정하였다. 율리아 티모셴코는 패배를 맞이하였다. 이로써, 오렌지 혁명의 과정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2014년 대선에서 페트로 포로셴코가 승리하여 대통령이 취임했으며, 2019년 선거에서 전직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를 이기고 희극인, 배우 출신의 정치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정식 대통령이 되었다.
경제
우크라이나의 경제 규모는 독립국가연합 국가 중 2위이다. 하지만, 정치와 사실상 마찬가지로 경제도 불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제는 유럽 연합이나 러시아, 미국 등에 의존하고 있다. 밀의 총생산량은 22,323,600톤(2011년, 세계 11위)이다.
사회
주민 구성 : 2001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민족 구성 비율은 우크라이나인이 77.8%, 러시아인이 17.3%이다. 약 12,000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며, 벨라루스인 역시 거주한다. 종교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믿는 기독교인이며 가톨릭교회이지만, 동방정교회 전례 즉, 예배방식을 따르는 동방 가톨릭교회인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와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개신교가 있다.
기후
대개 온화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데 남쪽의 크림반도 인근에서는 온난 습윤 기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비는 북서부 지방에 가장 많이 내리고 동부와 남동부 지역은 덜 오는 편이다. 겨울은 흑해 인근 지방이라면 따뜻하지만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대체로 추워진다. 여름에는 전반적으로 따뜻하지만 남쪽 지방은 무덥다.
기후
대개 온화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데 남쪽의 크림반도 인근에서는 온난 습윤 기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비는 북서부 지방에 가장 많이 내리고 동부와 남동부 지역은 덜 오는 편이다. 겨울은 흑해 인근 지방이라면 따뜻하지만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대체로 추워진다. 여름에는 전반적으로 따뜻하지만 남쪽 지방은 무덥다.
음식
우크라이나 전통음식은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생선, 버섯요리 등이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인들은 다량의 감자, 곡물, 신선하거나 절인 야채도 많이 섭취한다. 유명한 전통음식으로는 바레니키(밀가루 경단에 버섯, 감자, 독일식 양배추김치, 신 치즈 또는 체리를 넣고 끓인 음식), 보(사탕무와 양배추와 버섯 또는 고기를 넣고 끓인 빨간 수프), 그리고 홀룹찌(양배추에 쌀, 당근, 고기를 채워 넣고 말은 음식) 등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명물로서 키이우 치킨도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끓인 과일, 주스, 우유, 우랑 유(우크라이나인들은 우랑 유로 코타이 치즈를 만든다.), 생수, 차와 커피, 맥주, 와인, 호릴까를 마신다.
이하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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